일본 부채비율 240%의 진실: 국채·통화정책의 숨은 메커니즘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 대비 240%를 넘는다는데, 어째서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 걸까?" 사실만 놓고 보자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채비율이 높은 나라다. 그런데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본은 여전히 '안정적인 투자처'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 않다. 부채라는 개념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일본식 경제모델의 독특한 특성과 그 이면의 메커니즘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본의 부채는 누구에게 진 것인가?
일단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일본의 부채 대부분이 외국이 아닌 자국민에게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대개 일본은행(BOJ)과 일본 내 금융기관, 연기금,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양적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국채를 대량 매입해왔다. 이 말은 곧, 일본 정부는 사실상 자국 중앙은행에게 돈을 빌리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부채 구조는 통화주권을 강화한다.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도 아닌 일본이 이처럼 높은 부채비율을 견디는 이유는 자국 통화인 엔화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 국채를 일본 내부에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자본이 빠져나가면 환율과 금리가 요동치고, 그 충격은 국가 경제 전반에 퍼지지만, 일본은 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
일본은행이라는 '최종 구매자'
핵심은 일본은행의 역할이다. 일본은행은 2013년 아베노믹스 도입 이후 강도 높은 양적완화 정책을 실행했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그 결과 일본은행은 이제 일본 국채의 최대 보유자가 되었다. 이는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지출을 사실상 보조하는 형태로, 일반적인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케이스다.
이런 구조는 한편으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통화의 본래 가치가 훼손되고,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디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수요 부진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소비 위축이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국채가 일본 경제를 떠받치다
일본의 국채는 단순한 국가채무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 경제 시스템의 핵심 기둥 중 하나다. 정부는 국채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고, 이 자금으로 사회보장, 공공사업, 고용 창출 등을 이어간다. 이런 방식은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직접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 주도로 경제를 관리하려는 발상은 케인지언적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일본인들의 저축 성향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저축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였고, 이는 안정적인 국채 소화 구조를 가능하게 했다. 국민이 국채를 사주고, 정부는 그 돈으로 경제를 유지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정 부분 작동해온 것이다.
위기의 가능성은 없는가?
물론 이 시스템이 영원히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고령화로 인해 국채를 소화할 국민 수가 줄어들고 있고,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장기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중이 계속해서 높아지면, 결국엔 중앙은행이 통화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일본은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거의 없다. 외화표시 부채가 극히 적고, 대부분의 국채가 자국통화로 발행됐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할 수 있는 한, 이론상으로는 어떤 형태의 지급불능 사태도 피할 수 있다.
배워야 할 일본의 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일본을 반면교사 삼는다. 하지만 일본의 모델을 단순히 '나쁜 예'로만 보긴 어렵다. 적어도 일본은 경제적 충격에 대해 '자국 내에서 수습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냈고, 이는 위기 대응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결국 일본의 240% 부채비율은 단순한 수치 그 이상이다. 그것은 국가가 얼마나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있고, 얼마나 금융 시스템을 내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다. 부채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본은 그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