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여윳돈 최대 93조원, 소비 둔화 속 숨겨진 경제 시그널
올해 1분기, 우리나라 가계가 손에 쥔 여윳돈이 93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를 처음 집계한 2009년 이후 가장 큰 수치입니다. ‘가계여윳돈’은 쉽게 말해 가계가 벌어들인 돈 중에서 쓰지 않고 남겨둔 돈입니다. 흔히 말하는 여유자금, 즉 저축이나 투자로 돌린 돈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돈이 늘어난 이유가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소비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즉, 지갑을 덜 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은 늘었는데 왜 쓰지 않을까?
올해 초, 기업들이 준 상여금 덕분에 가계소득은 소폭 늘었습니다. 하지만 소비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1.4% 감소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연초 상여금이 들어오면 외식도 하고 쇼핑도 하고, 여행도 가면서 소비가 살아나는 흐름이 생기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돈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펀드와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예금만 50조 원 가까이 늘었고, 투자펀드도 30조 원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규모는 줄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절약이 아닙니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습니다. 고물가, 고금리, 부동산 시장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금은 쓰는 것보다 모아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가계여윳돈이 많아졌다는 건 좋은 일일까?
표면적으로 보면 가계가 빚을 덜 지고, 돈을 잘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계부채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9.4%로, 6분기 연속 하락세입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경제에 꼭 좋은 신호만은 아닙니다. 소득이 늘었는데 소비가 줄었다는 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낮다는 뜻입니다. 소비가 줄면 기업 매출이 줄고, 이는 다시 고용이나 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수가 위축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겁니다.
소비 심리 회복이 중요하다
결국 중요한 건 가계가 다시 지갑을 열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도 중요하지만, 소비 진작과 심리 회복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소득이 늘어도 그 돈이 시장에 돌지 않으면 경기가 살아나기 어렵습니다.
이번 1분기 통계는 단지 ‘여윳돈이 많아졌다’는 기록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 국민이 지금의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국민의 지갑은 정직합니다. 경제가 불안하면 자연스럽게 닫히고, 믿을 수 있을 때 열립니다.
결론적으로, ‘가계여윳돈 93조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고민을 보여주는 신호탄입니다. 소비 둔화는 단기적 현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읽고, 정책도, 시장도, 기업도 대응할 준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