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지방정부, 이재명 경기도 실험의 교훈
이재명 대통령이 기본소득을 정치적 의제로 처음 본격화한 무대는 다름 아닌 '경기도'였다. 성남시장 시절의 ‘청년배당’에서부터 경기도지사로서의 ‘청년 기본소득’, ‘농민 기본소득’, ‘지역화폐 연계 정책’에 이르기까지, 그는 지방정부의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험을 해봤다. 그리고 그 실험들은 오늘날 이재명식 기본소득 모델의 출발점이자 기초 설계도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대담한 정책 구상을 실제 행정현장에서 구현해봤다는 점에서, 경기도 실험은 매우 중요한 정치경제적 자산이다. 이 글에서는 이 실험이 남긴 성과와 한계, 그리고 그것이 중앙정부 정책 추진에 주는 함의에 대해 살펴본다.
청년 기본소득, 보편 복지의 씨앗
2016년, 성남시는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 원씩, 연 10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청년에게 공짜 돈을 왜 주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이재명 시장은 분명하게 말했다. “청년은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할 존재이며,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이 정책은 2019년 경기도 전체로 확장됐다. 약 17만 명의 청년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기본소득이 지급됐다. 그리고 결과는 단순히 '현금 지급'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청년층의 소비가 지역 내로 유입됐고, 자영업자들은 실질적인 매출 증대를 경험했다. 무엇보다, 기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청년들이 처음으로 '정책의 수혜자'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정책 만족도 조사에서도 수혜자 대부분이 ‘정기적인 지원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이재명식 기본소득은 여기서 ‘정책적 정당성’과 ‘정치적 실험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농민 기본소득, 경제+복지의 접점을 찾다
경기도는 청년뿐 아니라 농민을 대상으로도 기본소득을 시도했다. 이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고령화된 농촌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하고 농업에 종사한 농민에게 연 60만 원을 지급하되, 역시 지역화폐로 지급해 소비를 지역 경제 안에 묶어두는 방식이었다.
이 정책은 농업을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사례다. 동시에, 단순한 복지가 아닌 ‘지역 경제 순환 구조의 실험’이기도 했다. 기본소득이 단지 소득보전의 수단이 아니라, 소비의 방향성과 경제 생태계를 설계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물론 농민 기본소득은 일부 시군에 한정된 파일럿 프로그램이었고, 전체 경기도 차원에서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이를 통해 “지방정부가 기본소득을 통해 지역 경제 재생의 열쇠를 쥘 수 있다”는 점을 현실로 보여줬다.
지역화폐 연계, 단순한 현금이 아닌 '순환하는 돈'
이재명 대통령이 기본소득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개념이 ‘지역화폐’다. 그는 현금을 그냥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화폐를 통해 소비를 지역 상권에 유도하는 ‘순환경제’를 설계했다.
경기도에서는 이 지역화폐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거뒀다. 청년 기본소득 수급자가 지역 상점에서 소비를 하면서 소상공인의 매출이 증가했고, 지역경제에 대한 체감도 또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일부 지역에선 지역화폐 사용처의 제한성과 운영의 번거로움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현금보다 지역화폐가 낫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이 실험은 이재명식 기본소득의 전략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목적이 있는 복지’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게 할 것인가까지 설계하는 정책이다.
경기도 실험의 한계와 전국 확대의 과제
하지만 이 실험들이 전국 단위 정책으로 확장될 때는 전혀 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가장 큰 것은 ‘재정 자립도’다. 경기도는 대한민국에서 재정 여건이 가장 좋은 광역지자체 중 하나다. 따라서 경기도에서 가능했던 정책이 충청북도, 전라남도에서도 가능한지는 별개 문제다.
또한 지방정부 차원의 실험은 정치적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중앙정부의 보편 정책은 국회, 기재부, 이해집단, 언론 등 다층적 이해관계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정치적 설득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포퓰리즘’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 실험을 전국으로 확장하기 위해선, ‘정책 설계의 표준화’와 ‘재정 확보 전략의 현실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경기도는 실험실이었다. 이제는 전국이라는 훨씬 더 복잡한 무대를 위한 정교한 엔지니어링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