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정치경제학,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과제
기본소득은 경제정책이면서 동시에 정치철학이다. 돈을 나눠주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왜' 나누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는 복지국가의 핵심 가치와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를 동시에 건드린다. 그러니 기본소득은 필연적으로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그 한복판에서,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기본소득은 기득권과 이해집단의 정면 충돌을 불러온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그것을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과제들을 풀어야 하는지를 짚어본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가
기본소득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수의 이익’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특이하게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과 불이익이 균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고소득층에게는 기본소득이 세금 증가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자신이 받는 기본소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이므로, 사실상 '손해'를 보는 셈이다. 반면,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이득을 본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 내에서 가지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다.
정치경제학의 고전 이론에 따르면, ‘조직화된 소수’는 ‘조직되지 않은 다수’보다 항상 강력하다. 기본소득은 명분은 있지만, 강력한 이해집단의 저항을 유발하는 구조다. 특히 조세저항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보편 증세’와 ‘복지 확대’는 아직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재명 정부는 이 구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가 제시하는 토지세, 탄소세 등은 기존의 조세 기반을 흔들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수를 창출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런 신세원은 대부분 간접세적 성격을 가지며, 여전히 조세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책은 이상이 아니라 연합의 산물
정책은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가 누구와 연합했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이재명식 기본소득이 현실화되려면, 사회적 연합과 설득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청년 기본소득의 경우, ‘청년층+지역 소상공인+복지 지지층’이라는 전략적 연합을 형성할 수 있다. 이들이 하나의 정치 블록으로 조직되면, 그것은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를 전국 단위 정책으로 확대하려면, 세대 간·계층 간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적 설득에 능한 인물이다. 그는 ‘사이다 발언’으로 대중의 정서를 읽고 반영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즉흥적인 메시지로는 설득할 수 없는 구조다.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로드맵, 실증 기반의 설계,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정치력으로 감당하기에는 매우 무거운 과제다.
정치는 경제보다 느리다
경제논리만 놓고 보면, 기본소득은 기술실업과 소비 부족 시대에 상당히 합리적인 대응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는 언제나 경제보다 느리다는 것이다. 특히 기본소득처럼 체제 전환에 가까운 정책은 수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어떤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는 전 국민 대상의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부분적 기본소득'이 정책 실현의 첫 단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파일럿 정책'의 성과와 사회적 반응이다. 이 첫 실험이 성공해야만 이후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의 시간표에 맞는 경제적 설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재명 정부는 기본소득을 단기적 성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장기적 체제 개편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부담이 크지만,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결론은 사회적 합의다
기본소득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자 사회적 약속이다. 국민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한다는, 새로운 ‘사회 계약’의 시도다. 이 계약은 절대로 위에서 명령하듯이 내려질 수 없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동의, 즉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과제는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다. 기본소득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만큼 정책의 설계자와 시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조율해 나가야 할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