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100% 관세, 수출 중심 한국산업의 위기 신호
반도체가 무너지면 한국 산업이 흔들린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하나가 한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그는 반도체에 대해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언뜻 보면 선거용 정치적 레토릭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세계 무역 질서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이 ‘반도체’라는 핵심 산업을 정조준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오랜 기간 수출에 기대어 성장해왔다. 그중에서도 반도체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한국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반도체가 책임지고 있고, 이 중 상당 부분이 미국 및 미국 영향을 받는 글로벌 IT 기업으로 향한다. 그런데 미국이 고율의 관세로 이 흐름을 막겠다고 나선다면, 그 여파는 단순히 반도체 업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업 전체, 더 나아가 국민경제 전반에 걸쳐 연쇄 충격이 올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한마디, 세계 시장을 흔들다
트럼프의 발언 이후 글로벌 증시는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 반도체 관련 주가는 하락했고, 한국 증시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 이는 단지 주가 변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자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기술 패권 경쟁 심화, 규제 리스크 확대를 동시에 고려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결국 ‘돈이 들어오는 흐름’에 영향을 준다.
100%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경쟁력을 잃는다. 미국 시장에 납품하는 비용이 두 배로 뛰고, 이는 곧바로 고객사 이탈로 이어진다. 고객을 잃으면 생산량을 줄여야 하고, 생산을 줄이면 고용이 줄고, 고용이 줄면 소비가 위축된다. 작은 불씨가 국민경제 전체로 번지는 이유다.
중간재 수출국의 민낯, 드러나다
한국은 완제품보다 중간재 수출국의 특성을 강하게 가진다. 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들어낸 반도체는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같은 미국 기업의 부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중간재 수출은 무역 분쟁에 가장 먼저 희생되는 대상이다. 완성품보다 대체 가능성이 높고, 특정 국가에 종속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여기에 고율 관세까지 도입하면, 한국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공급망이 미국 내에서 자급자족 형태로 재편되면, 한국은 생산기지의 지위에서 밀려난다. 다시 말해, 산업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 의존형 성장 전략, 전환 시급
그간 한국 경제는 반도체 호황기에만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 같은 성장 전략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반도체라는 특정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는 대외 변수에 매우 취약하다. 이번 관세 이슈는 그러한 구조적 리스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구조, 첨단 기술 분야의 내재화, 중소기업과 벤처 생태계의 확충이 시급하다. 정부와 기업 모두 ‘포스트 반도체’ 전략을 본격적으로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 반도체만 바라보다가는 또 한 번 세계 질서의 변화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통상외교와 산업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지금은 외교와 산업이 맞닿아 있는 시기다. 통상 이슈는 곧 산업 생존의 문제이며, 정치적 외교력이 수출길을 여는 시대다. 그만큼 통상외교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한국은 과거 한미 FTA, 한중 FTA 등을 통해 교역 기반을 넓혀왔지만, 이제는 ‘첨단산업 보호’라는 새로운 질서에 대응해야 한다.
반도체에 관세 100%를 부과하겠다는 발언이 나온 순간, 정부는 곧바로 외교 채널을 가동하고 주요국과의 협의에 나서야 했다. 미중 갈등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이 다시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산업 경쟁력 못지않게 정치적 기민함이 요구된다.
소비자에게 닥쳐올 파장도 크다
관세는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된다. 미국 내 IT 제품의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고, 한국산 부품에 대한 수요도 동반 하락한다. 또한 글로벌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면, 가격 경쟁에서 밀린 한국 부품은 쉽게 대체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계소득 감소, 소비 위축, 내수 침체라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이미 고물가와 고금리로 움츠러든 국내 소비 시장에 추가적인 충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야 할 때
이번 미국의 관세 이슈는 분명한 위기다. 하지만 위기에는 언제나 기회가 숨어 있다. 반도체 의존형 성장에서 벗어나 기술력 기반의 산업 다변화, 고부가가치 제조업 육성, 내수 기반 강화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제 중요한 건, 과거의 호황에 안주하지 않는 일이다. 반도체는 여전히 한국의 대표 산업이지만, 그 위에 더 많은 기술과 산업이 얹혀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100% 관세’가 터졌을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