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변화와 증시 불안, 코스피가 보여준 경고

 


올해 초, 코스피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연초 대비 33% 넘게 치솟으며 아시아 증시 중 가장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반도체 업황 회복, 글로벌 공급망 안정, 그리고 AI·배터리 등 신산업 기대감이 한국 증시에 훈풍을 불어넣었다. 투자자들은 “이제 코스피 4,000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기대를 나누었다.

그러나 시장은 종종 작은 바늘 하나에도 풍선처럼 터져버린다. 며칠 전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과 증권거래세 인상을 발표하자, 코스피는 하루 만에 3.9% 급락했다. 시가총액 수십조 원이 증발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책’이라는 단어가 투자 심리에 얼마나 빠르고 깊게 파고드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세금은 기업의 체온계다

법인세 인상은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 이는 순이익을 줄이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순이익이 줄면 배당 여력이 줄고, 투자 여력도 감소한다. 결국 기업의 성장 전망이 어두워진다. 시장은 그 변화를 가격에 반영한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주가는 떨어진다.

증권거래세 인상은 투자 비용을 높인다. 거래세는 매수·매도할 때마다 발생하는 마찰 비용인데, 이 비용이 커지면 단기 거래가 위축되고 시장 유동성이 줄어든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한국 시장에 굳이 머물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 속에서는 세금 인상이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금융시장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심리부터 반응한다. 세율 인상 소식이 전해진 날, 외국인 투자자는 대규모 순매도를 기록했고, 원화 가치는 동시에 약세로 돌아섰다. 세금 정책이 환율과 증시, 그리고 국가 신용도까지 연쇄적으로 흔드는 순간이었다.


불확실성이 시장을 갉아먹는다

시장은 나쁜 소식보다 예측 불가능한 소식을 더 싫어한다. 법인세와 거래세 인상은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거론된 바 있었지만, 시점과 강도는 예상을 벗어났다. 투자자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이런 불확실성이다.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면 투자자들은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대규모 설비 투자나 해외 진출 계획은 세후 수익률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세제가 자주 바뀌면 이 계산이 흔들린다. 그 결과, 투자 지연과 성장 둔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정책은 단기 세수 확보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는 ‘안정성’이라는 신뢰 자본이 훨씬 값지다. 시장은 세금을 내는 것도, 규제를 따르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방식이어야 한다.


정책 신뢰가 경제 체력을 만든다

주식시장은 종종 투기적이고 변덕스럽다고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의 조기경보 시스템 역할을 한다. 이번 코스피 급락은 단순히 세금 인상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정부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얼마나 빠르게 흔들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신호다.

투자자와 정부의 관계는 일종의 계약이다. 정부는 세금과 규제를 설계하고, 투자자는 그 틀 안에서 자본을 운용한다. 그런데 계약의 조건이 예고 없이 바뀌면, 자본은 더 안정적인 곳으로 이동한다. 글로벌 자본은 감정이 없지만, 위험에는 본능적으로 도망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반도체·배터리·AI 등 신성장 산업에서 큰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회는 정책의 신뢰라는 토대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 세제 정책이 그 토대를 무너뜨린다면, 상승세는 순식간에 꺾인다.


숫자만이 아니라 심리의 세계

증시는 숫자의 세계 같지만, 실제로는 심리의 세계다. 차트 위의 선은 매출이나 이익뿐 아니라, 기대와 불안, 신뢰와 의심이 얽혀서 그려진다. 세금 정책은 그 심리의 균형을 크게 흔드는 도구다.

이번 코스피 급락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세금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흔들고 있는가?”
정책 입안자들은 이 질문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단기 세수 확보보다 장기 신뢰 유지가 훨씬 값지다. 자본은 신뢰를 따라 움직이고, 신뢰는 경제의 가장 강한 성장 엔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