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0.8% 경제성장률 전망, 내수·수출 개선에도 건설부진 ‘그림자’
작은 반등의 착시, 그리고 현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입니다. 지난 5월 전망과 동일한 수치입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흐름’은 분명 달라져 있습니다. 민간소비와 수출은 예상보다 개선됐지만, 건설투자가 깊게 꺼지면서 전체 성장의 발목을 잡은 구조입니다.
경제는 흔히 여러 엔진이 달린 자동차에 비유됩니다. 내수·수출이라는 두 엔진은 회전 속도를 조금 높였지만, 건설투자라는 세 번째 엔진이 멈춰버린 셈입니다.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순간입니다.
민간소비의 힘, 그러나 한계
KDI는 민간소비 증가율을 기존 1.1%에서 "1.3%"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2차 추경에 따른 재난지원금·소비쿠폰 지급, 정부의 소비촉진 행사 등이 일정한 효과를 거둔 결과입니다. 숫자로 보면 0.2%포인트의 개선인데, 경제성장률에는 대략 0.1%포인트를 보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변화는 분명 긍정적입니다. 다만 내수의 힘이 구조적 경기침체를 뒤집을 만큼 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우리 경제의 소비는 가계부채, 고금리, 물가 부담이라는 세 겹의 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잠깐의 호흡’은 가능해도, 숨을 길게 고르며 달릴 체력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수출의 회복, 반도체의 부활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 수출은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반도체 가격과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자 수출 전망치가 확연히 개선됐습니다. KDI는 상품수출 증가율을 기존 0.5%에서 "2.1%"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상향 폭이 무려 1.6%포인트입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반등과 글로벌 AI·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주된 동력입니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한 번 반등이 시작되면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되고, 관련 장비·소재 산업에도 파급효과가 큽니다. 문제는 반도체가 가진 순환적 성격입니다. 지금의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 품목 의존형 성장’의 취약성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건설투자의 추락, 성장의 발목
내수와 수출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음에도 성장률이 0%대에 머문 핵심 이유는 건설투자의 급락입니다. KDI는 올해 건설투자가 무려 –8.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5월 전망치보다 하락 폭이 더 커진 수치입니다.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정상화가 지연되고, 고금리 부담으로 민간 주택 공급이 줄었으며, 안전 규제 강화와 대형사고 여파로 공사 중단 현장이 늘었습니다. 건설업은 단순히 GDP 항목 중 하나가 아니라, 고용·자재산업·금융과 직결된 ‘연쇄효과 산업’입니다. 이 분야가 침체하면 연관 산업 전체가 위축되며 성장률에 직접 타격을 줍니다.
정책 대응,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KDI는 추가 재정 투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금 당장 대규모 재정을 더 풀기보다는 내년 예산에 반영하는 방향이 낫다는 판단입니다. 그러나 0.8% 성장률이 사실상 ‘제로 성장’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건설투자 회복을 위한 금융·규제 완화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동산 PF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고,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 강화와 공사 재개를 병행하는 전략이 요구됩니다. 단순히 “투자를 늘려라”는 구호가 아니라,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민간이 자발적으로 투자에 나설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놓치고 있는 위험 요인
KDI는 대외 변수도 경계했습니다. 미국·중국과의 통상 갈등, 특히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관세·규제 가능성은 향후 수출 환경을 뒤흔들 수 있습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취약합니다. 수출 품목과 시장 다변화가 단기적으론 쉽지 않지만, 중장기적 과제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앞으로의 길
결국 이번 0.8% 전망치는, 우리 경제가 ‘성장의 불씨’는 지켰지만 ‘불꽃’까지 피우기에는 여전히 힘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소비와 수출이 살아나도 건설 부문이 무너진다면, 성장률은 그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2025년을 넘어서는 회복을 위해선 건설투자의 정상화, 내수 부양과 수출 다변화를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필요합니다.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라는 경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