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무지출이 뭐길래 프랑스 경제가 붕괴되었는가?

 


프랑스가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내각 총사퇴라는 경제·정치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년 전부터 구조적으로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경제가 버티지 못할 만큼 불어난 의무지출, 그리고 그에 따른 재정 압박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셈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게 이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국가의 지출 구조 중에서도 손대기 어려운 ‘의무지출’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무지출이란 무엇인가

국가 예산에는 두 가지 축이 존재합니다. 정부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임의지출과, 법률 또는 제도에 따라 자동으로 지출되는 의무지출입니다. 연금, 실업수당, 건강보험, 공공의료비, 그리고 국채 이자 지출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의무지출은 정치적 의지로도 쉽게 줄일 수 없습니다. 이미 제도화되어 있고, 국민의 권리로 보장되어 있으며, 줄일 경우 강력한 사회적 반발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부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출’을 계속 떠안게 됩니다.


프랑스, 의무지출이 무너뜨린 나라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지향해 왔습니다. 노후보장, 무상의료, 실업수당 등 폭넓은 사회보장제도를 자랑해왔지만, 그 이면에는 급격히 불어나는 의무지출이라는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고령화입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질수록 연금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반면 생산가능 인구는 줄어들면서 연금 재정은 갈수록 악화됩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에너지 위기, 금리 상승 등 외부 충격이 겹치면서 국가 재정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의무지출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불어나자, 프랑스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서 국채 이자 부담이 폭증했고, 결국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기에 이릅니다. 이는 곧바로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졌고, 경제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습니다.


의무지출 과잉의 악순환

의무지출이 많다는 건 국가 예산에서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예산의 대부분이 고정비처럼 묶여 있어 경기 대응, 미래 투자, 위기 대응 여력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기에 이자지출까지 커지면 정부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세금을 더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강력한 저항에 부딪힙니다. 감세에 익숙한 국민에게 증세는 정치적 자살행위이고, 복지 축소는 시위와 혼란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결국 정부는 뾰족한 해법 없이 시간을 끌고, 재정위기는 점점 깊어지게 됩니다. 프랑스가 지금 딱 그 상황입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역시 의무지출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고령층을 위한 지출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입 증가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연금개혁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복지지출 축소는 사회적 반발을 낳습니다. 그렇다고 국채를 계속 찍어낼 수도 없습니다. 이미 국가채무 비율이 상당한 수준에 와있고, 금리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의무지출 구조를 점검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해결을 위한 전략

의무지출을 무작정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먼저 연금제도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수급연령 상향, 소득대체율 조정 등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또한 의료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고, 실업급여 제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고, 복지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입니다. 의무지출 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적 합의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세계를 향한 교훈

프랑스의 사례는 단지 한 국가의 위기가 아닙니다. 복지를 확대하면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국가가 복지를 확대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 의무가 경제를 압박하고, 미래세대에게 부채로 전가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복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의무지출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필요함’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갖추어야 할 진짜 경제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