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인 기술자 비자 논란: 정치 선동과 노동시장 간의 모순

 


미국이라는 나라는 늘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 불렸지만, 때때로 그 자유는 내부의 두려움과 외부의 희생을 담보로 삼습니다. 최근 불거진 ‘한국인 기술자 비자 구금’ 사태 역시 그런 미국의 정치적 본색을 엿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뉴스 헤드라인에는 “미국에서 한국 고급기술자들이 비자 문제로 구금 중”이라는 문장이 반복되고, 그 뒤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익숙한 레토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 기술자들이 미국 현지 근로자에게 고급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이 공장을 돌려야 한다.”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공장은 정치 구호로 돌아가지 않으며, 산업은 강요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기술 이전? 그게 산업의 본질이라면 아프리카는 이미 반도체 강국이다

트럼프가 말한 ‘기술자 파견과 교육’은 한 마디로 말해 한국이 미국의 제조현장에 인력과 기술을 대가 없이 제공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허상입니다. 기술이라는 건 단순히 배워서 복사해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누적된 경험, 문화, 기업의 조직력, 그리고 숙련도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고된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한국인들이 더는 감내하기 힘든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 때문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 내 근로자들이 이런 작업을 자발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보이길 원하는 걸까요? 진실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현실을 왜곡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 방식, 트럼프식 쇼 정치의 전형입니다.


미국 노동시장의 현실은 ‘기피업종의 자국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 역시 고강도 생산 현장에서 일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이민 노동자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를 배척하고, 외국 기술자를 이용하려는 이중적 태도는 자가당착입니다. 노동의 문제는 교육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술을 가르쳐도, 그 기술을 사용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공장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이란, 단순히 물리적 장비가 아니라 그 일을 해낼 ‘의지 있는 노동자 집단’입니다.

미국의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의 힘 없이, 낮은 임금으로, 자발적으로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 믿는 건 산업의 본질을 오해한 것입니다. 한국이 동남아에 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한국인이 가서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요. 산업의 이동에는 이유가 있고, 그것은 단순히 기술의 이전이나 국가 의지로 바뀌지 않습니다.


외교의 문제일까, 산업 전략의 문제일까?

이번 사태는 단지 한두 명의 비자 구금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앞으로 기술 국경을 넘나드는 인력 흐름에 대한 미국의 본심을 보여주는 신호탄입니다.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목으로 외국 기술자들을 ‘도구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에 무기력하게 휘둘린다면, 우리의 산업주권은 언제든 타국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호해야 합니다. 외교적으로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자국민 보호라는 당연한 원칙에 따라 정당한 항의와 요구를 해야 합니다. 동시에 산업 전략 차원에서도 재정비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특정 국가에 기술을 의존하거나, 기술 인력을 손쉽게 외국에 보내는 구조를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 인력은 수출품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자산이다

트럼프는 한국의 고급 기술자를 미국의 생산 라인에 ‘무상교육자’로 쓰고 싶어합니다. 이 구도는 명백히 불평등합니다. 미국이 필요로 한다면 정당한 계약과 조건을 통해 기술을 들여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을 원하면서도 그 대가를 치를 의지는 없어 보입니다.

기술 인력은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는 수십 년간 쌓아온 국가의 무형자산이며, 교육 투자와 산업환경이 낳은 결과입니다. 이를 정당한 절차 없이 활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주권 침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맞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재정비’

이번 사태를 단순한 트럼프식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긴다면, 우리는 더 큰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대응입니다. 기술자에 대한 해외 파견 정책, 기술 이전 기준, 산업 내 자국인력 육성 전략 등을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론은 자극적인 ‘구금’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미국의 구조적 모순을 보다 날카롭게 짚어야 합니다. 정치적 선동에 휘둘리는 노동시장, 거기에 희생되는 한국 기술자의 현실은 우리가 반드시 주목하고 보호해야 할 영역입니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산업과 노동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입니다. 쇼에 휘둘릴 것인가, 산업 주권을 지킬 것인가. 그 갈림길에 지금, 우리가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