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세션 진입한 우리경제,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
경제는 늘 자란다는 가정 아래 세워진 시스템입니다. 매년 GDP가 오르고, 수출이 늘고, 기업 실적이 개선되며, 개인 소득도 오를 거라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 점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슬로우세션(slowcession)’, 즉 ‘느린 불황’ 혹은 ‘느린 성장의 덫’에 우리 경제가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매년 3~5%씩 자라던 경제가, 1~2% 성장도 버거워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그 속도에 좌절할 게 아니라, 그 속도 안에서 지속 가능성을 찾는 방향으로 우리의 시야를 옮겨야 할 때입니다. 성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더 오래, 더 단단히 버틸 수 있는 경제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입니다.
고성장의 종언, 그리고 슬로우세션
과거 한국 경제는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산업화, 수출 주도, 교육 투자, 고도 근로 시간이라는 네 가지 축이 고성장의 엔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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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은 세계 최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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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는 OECD 최고 속도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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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중심의 수출은 경쟁국과 기술 격차가 좁아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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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장의 동력 자체가 약해진 상태에서 과거와 같은 성장률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환상에 가깝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슬로우세션’입니다.
슬로우세션은 기술적으로는 ‘불황’은 아니지만, 체감으로는 불황과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소비는 정체되고, 기업은 투자에 소극적이며, 정부의 재정 여력은 한계에 가까워집니다. 경제는 겨우 움직이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방향 잃은 항해와 같습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성장률에 집착할까?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판단할 때 성장률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장률이 3%를 넘으면 희망을 말하고, 1%대로 떨어지면 위기를 외칩니다. 하지만 이미 성숙 경제에 진입한 국가들에겐 ‘낮은 성장’은 위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질문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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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장 없이도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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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더 이상 커지지 않아도 국민 삶의 질을 유지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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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단기 부양책에서 벗어나 중·장기적인 체질 개선으로 옮겨가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슬로우세션은 ‘느린 성장’이 아닌 ‘느린 침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장보다 지속가능성: 새로운 시대의 전략
이제 경제정책은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어떤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중심에 둬야 합니다.
1. 취약계층 보호와 내수 안정
고성장기에는 외부 수요만으로도 경제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슬로우세션 시대에는 내수 시장의 안정성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선 가계의 소득 안정, 의료·주거·교육 부담 경감, 일자리 안전망 강화 등이 필요합니다.
2. 디지털 전환과 인적 자본 투자
인구 감소로 노동력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이 중요해집니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 데이터 기반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그 열쇠입니다.
동시에 기존 인력을 새롭게 훈련시키는 재교육 체계와 평생학습 인프라도 강화해야 합니다.
3. 산업 구조 개편과 친환경 전환
낡은 산업 구조에 의존하는 경제는 위기에 더욱 취약합니다. 지속 가능성은 ‘친환경’, ‘디지털’, ‘지역 균형’, ‘사회적 가치’라는 키워드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 녹색 기술 투자, 탈탄소 산업 육성이 단기 비용처럼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생존의 길입니다.
4. 정부의 역할 변화
이제 정부는 경제의 직접적인 성장 엔진이 되기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설계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금 인센티브, 규제 혁신, 민간 협력 구조 등이 그 도구입니다.
‘버티는 경제’가 아니라 ‘단단한 경제’로
슬로우세션은 단기적인 충격이 아닙니다. 어쩌면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이 흐름을 단순히 버틴다고 해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버티는 경제가 아니라, 단단한 경제를 만들겠다는 방향 설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정권이나 정책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가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습니다. 대신, 멀리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성장률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 그리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기반입니다.
슬로우세션은 성장을 멈춘 시대가 아니라, 성장을 재정의해야 할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