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고령화시대 생존전략인가 세대 갈등의 불씨인가

 


‘일하고 싶다’는 노인의 외침, 사회는 준비됐는가

한국 사회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은 길어지고 있지만 정년은 여전히 60세 전후에서 멈춰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나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소득이 끊기는 상황은 당사자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제도가 바로 ‘임금피크제’입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연장해주는 대신 일정 나이 이후 임금을 낮추는 제도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숙련된 인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근로자 입장에서도 급여는 줄어들지만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얼핏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도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임금이 줄어드는 순간,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임금피크제가 처음 제도화되었을 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정부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명예퇴직의 다른 이름’이라는 비판도 있었고, 실질임금 하락에 따른 생계 위협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제는 임금이 줄어드는 폭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습니다. 고령 근로자들은 대부분 자녀 교육비나 주거비 등 지출이 여전히 많은 세대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월급이 30%, 심지어 50%까지 줄어들면 생활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연봉이 높은 일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설계된 임금피크제가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세대 간 균형인가, 세대 간 갈등인가

임금피크제는 단순한 인사정책이 아니라 세대 간 경제적 분배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령자의 자리를 줄여 청년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논리는 얼핏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청년층 일자리 부족의 본질적인 원인을 회피하는 미봉책일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비용이 실제로 청년 고용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검증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또한, 임금피크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구조에서 성과 중심으로의 전환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임금 삭감’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고령 근로자에게는 불합리하고, 청년에게는 실익 없는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봐야 할 임금피크제

최근 들어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100세 시대, 은퇴 후 수십 년의 생계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정년 60세는 지나치게 이른 퇴장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년 연장을 추진하려면 임금피크제와의 조화를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히 ‘오래 일하되 적게 받으라’는 식의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한 노동시장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임금 체계’와 ‘생애주기별 노동 설계’가 필요합니다. 생산성이 있는 한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청년 세대에게는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회의 문을 넓혀주는 제도적 설계가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피크를 넘은 후에도 쓸모 있는 사회로

임금피크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끈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억울한 희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초고령화는 이 제도의 개선과 진화를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입니다. 노동시장에서 퇴장한 후의 삶까지 포함한 ‘경제 생애 주기’를 설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임금피크제가 단순히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숙련된 인력이 마지막까지 존중받고 활용될 수 있는 기제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임금피크제를 다시 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 시점입니다. 사람은 나이 들어도 무너지지 않도록, 사회는 제도를 통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