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당연한 이유: 화폐경제의 구조와 불가피성

 


물가는 왜 오를까요? 오늘 사 먹은 커피 한 잔이 어제보다 500원 더 비싸면 우리는 불쾌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렇게 묻습니다. “애초에 화폐경제에서 물가 상승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실제로 인플레이션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화폐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에서 비롯된 필연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인플레이션이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닌, 화폐 시스템의 구조적 결과인지를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돈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먼저 우리는 '돈'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화폐는 대부분 신용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공급하고, 시중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실행합니다. 즉, 대출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돈이 생겨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폐는 고정된 실물 자산이나 금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금본위제에서 벗어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화폐는 단순히 거래의 매개 수단일 뿐 아니라 부채와 신용의 숫자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대출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부채가 늘어나는 구조, 그리고 인플레이션

화폐경제는 필연적으로 부채를 만들어냅니다. 기업은 설비 투자나 유통 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을 받습니다. 가계는 주택 구입이나 소비를 위해 금융기관을 찾습니다. 정부조차도 국채를 발행해 지출을 감당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부채의 이자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결국 더 많은 돈이 경제에 유입되어야만 이 이자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대출, 새로운 통화 공급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화폐의 총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화폐의 증가는 물가에 반영됩니다. 같은 양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더 많은 돈이 쫓아다니게 되면, 그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화폐경제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의 부산물이 아니다

흔히들 인플레이션을 경제 성장의 신호로 해석합니다. 물론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건, 경제 성장이 없어도 인플레이션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경제가 정체되거나 심지어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실물경제의 논리와는 별개로, 화폐경제의 내부 구조가 지속적으로 돈을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은 경제가 좋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돈이 계속 만들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물가 상승의 원인을 경기나 정책 탓으로만 돌리게 됩니다.


중앙은행의 고민: 인플레이션과의 공존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왜 통화량을 조절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통화정책은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기준금리를 조정하거나 유동성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잡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화폐경제의 본질은 성장과 확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화량을 줄이면 일시적으로 물가는 잡힐 수 있지만, 그만큼 성장도 둔화됩니다. 기업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가계의 소비 여력이 떨어지며, 실업이 늘어나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결국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며 경제를 운영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 상승률 2% 내외를 목표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통제 가능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오히려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적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오히려 정체된 경제,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훨씬 더 무섭습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비를 미루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며, 일자리는 사라집니다. 이는 일본이 수십 년간 겪은 현실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인플레이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흐름 속에서 자산을 어떻게 배분하고,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어떻게 돈을 관리할지를 고민하는 일입니다.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그에 맞는 경제적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화폐경제가 존재하는 한,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화폐경제의 본질에서 기인한 결과이며,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화폐는 늘어나야 하고, 그만큼 물가는 오릅니다. 이를 억제하려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인플레이션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흐름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경제적 지혜를 갖추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 바로 경제생활의 첫걸음입니다.